[2023년 8월5주] 잉크픽 ㅣ 웹툰 세계관으로 정책을 홍보한다면?

잉크닷 픽(pick)은 주간 단위 중앙행정기관의 유튜브 영상 콘텐츠를 분석하며 잉크닷 에디터가 눈여겨 본 콘텐츠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새로운 유형, 시도 또는 다른 영상과 차별된 부분이 보이는 영상을 선택하며 그 이유와 성과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웹툰, 웹소설의 세계관으로 정책을 홍보한다면?

웹툰과 웹소설 등의 콘텐츠IP에 대한 높은 관심은 어제 오늘이 아니죠. 특히나 이들 콘텐츠의 경우에는 상상력의 한계가 없다보니 소재의 폭이 매우 넓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상력이 유난히 뛰어난 편인지, 우리 콘텐츠는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죠.

웹툰과 웹소설의 세계관은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트렌드를 보면 무협과 판타지 그리고 회귀 등의 다양한 설정과 세계관이 합쳐져 뛰어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기업과 기관 등에서 이러한 트렌드를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겠죠?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 바로 빙그레의 '빙그레우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빙그레우스는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판타지 세계관을 반영, 퀄리티까지 확보한 B콘텐츠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후 이런 세계관과 부캐가 너무나 넘쳐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사실 이런 콘텐츠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건 확실합니다.

공공기관 역시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B급 세게관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반영하려고 하지만, 성공한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요. 공공기관이라는 경직된 문화에서 이러한 B급 콘텐츠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죠. 물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곳도 있을테고요. 그나마 '충주시'의 충주맨이 이런 추세를 반영한 콘텐츠로 주목을 끌고 있는 정도입니다.

웹소설의 세계관을 반영한 정부 콘텐츠?

최근 행정안전부 유튜브 채널에 재미있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무원 조직이라면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 같은 영상, 바로 웹소설의 세계관을 활용해 지진국민행동요령을 소개하는 것인데요. 중세 판타지 시대로의 회귀와 빙의를 소재로 재미있게 풀어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뭔가 세계관에 매우 빠져 있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게 느껴지는 게, "영상을 시청하던 내가..."라는 소재는 요즘 웹소설, 웹툰에서 자주 사용하는 클리셰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유도하는 이 영상,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물론 지진국민행동요령 키워드를 제목의 뒤에 붙여 공공의 색깔을 살짝 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은 해봅니다. 더불어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로 빙의해 난관을 해결하는 전개 역시 요즘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어서, '제대로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댓글 반응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정안전부가 이런 영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지금까지 행정안전부의 영상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영상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브리핑 또는 정보 전달 목적의 영상이 많았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영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해답은 제목의 뒤에 있습니다. '2023 지진안전웹툰공모전 대상 수상작'라는 것에서 행정안전부에서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공모전에 입상한 영상이라는 것. 공공기관의 시각이라는 것을 호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이라는 한계와 해당 조직 안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테두리에 갇혀 있다 보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보다는 안주하려는, 뭔가 눈에 띄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될 수 밖에 없죠. 이를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공모전을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내부의 시각이 아니라 외부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때로는 더 설득력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행정안전부 입장에서도 위의 영상이 잘 만들어지고 재미있는 것은 알지만, 행정안전부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재하는 것에 대한 위험 부담은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이를 극복하고 채널에 게재한 것만으로도 매우 칭찬할만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내부 구성원이 조직의 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 보다 외부의 시각을 빌려 만들어낸 콘텐츠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활동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게 공모전 퀄리티라고?

더불어, 이 영상을 보고 놀란 것이 더 있다면 바로 영상 퀄리티입니다.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다수의 공모전 영상을 보면 솔직히 퀄리티가 매우 낮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비전문가가 제작한 영상이기에 시간과 돈을 들여 전문 업체에서 만든 영상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만, 때로는 심각할 정도의 낮은 퀄리티의 영상을 공식 채널에 게재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지진안전 공모전 영상은 이러한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놀라운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웹소설의 세계관 반영을 시도했다는 것부터, 사용한 이미지 퀄리티, 간간히 보이는 효과, 목소리 연기까지... 공모전에서 쉽게 보기 힘든 영상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영상이 앞으로도 많이 보여지기를 바라봅니다.